장자

[장자][인간세]남에게 해를 끼치는 방법

태루럽 2024. 7. 4. 12:04
너는 덕이 중후하고 신의가 꿋꿋하지만 아직 남의 기분을 알지 못하고, 명예를 다투지는 않지만 남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애써 인의/도덕 이야기를 난폭한 자 앞에서 늘어놓는다면 이는 남의 결점을 이용하여 자기가 잘났음을 팔려는 짓이 된다. 이런 일은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라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반드시 남에게서 해를 돌려 받게 되니, 너도 남에게서 해를 입기가 십상이리라. (『장자』, 안동림 옮김(현암사), 106쪽)



이 말은, 제자인 안회가 이웃 나라인 위나라의 폭군의 마음을 돌리려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자, 이를 저지하며 스승인 공자가 한 말이다.

위 씨앗문장에서 공자는 안회의 부족한 점이 ’남의 기분을 알지 못하고, 남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라고 했다.

기분과 마음이란 무엇인가?

*기분(국어사전): 대상, 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유의어: 심기, 정서, 생각, 컨디션, 분위기, 무드, 마음, 느낌, 감정

*마음(국어사전): 사람이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유의어: 뜻, 성격, 느낌, 기분, 가슴, 감정

여러 뜻이 있지만 대략 위와 같이 정리해 본다. 기분이란 것은 조건, 환경이 바뀌면서 느끼는 유쾌, 불쾌의 감정을 말하고,

마음이란 것은 외부의 자극, 외부 조건과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재된 기본 성격, 본성, 천성과 비슷한 말이라고 이해 된다.

위나라의 폭군은 어떤 사람일까? 책에는 ’나이가 젊고 제멋대로 독재를 한답니다. 경솔하게 국권을 남용하고 잘못을 깨닫지 못하며, 함부로 백성을 사지에 몰아넣어 그 주검이 너무 많아, 나라를 못에 비유해서 계향한다면 그 속에 무성한 잡초와 같을 지경이라, 백성은 어찌할 바를 모른답다.(103쪽)‘고 표현된 것으로 보아, 거침없이 악행을 저지르고 남의 목숨을 함부로 하고 반성이 없는 인간유형으로 보인다.
인간의 유형을 위의 ‘기분과 마음’으로 거칠며 극단적으로, 요즘 유행하는 어투로 분류해 본다.

1. 마음(본성)이 선하며,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
2. 마음(본성)이 선하며,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
3. 마음(본성)이 악하며,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
4. 마음(본성)이 악하며,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1, 2번에 해당한다. 마음에 몇 개의 흠과 이기심을 갖고 있지만, 대부분 선한 일을 행할때 행복과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위나라 왕은 3번과 4번 어느 언저리의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까?
이에 대한 해법이 [장자][양생주]에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심재心齋……”….. 안회는 말한다. “부디 심재에 대해 가르쳐 주십시오.“ 중니(공자)가 대답했다. ”…… 참된 도는 오직 공허속에 모인다. 이 공허가 곧 심재이다.” 안회는 말한다. “제가 지금까지 심재를 못한 것은 정말 제 자신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심재를 하여 자신에 구애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선생이 대답했다. “…… 네 말을 들어주면 하고, 안 들어주면 그만두어라” (『장자』, 안동림 옮김(현암사), 115쪽)


미국에 가면 영어를 해야하고, 일본을 가면 일어를 해야하고, 중국을 가면 중국어를 해야한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인에게 한국어를 하는 것은 ‘어리석다.’ 또 같은 한국인이라 해도 유치원생에게 하는 말과 대학원 박사과정중인 사람과 하는 말에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최고의 선생은 제자가 알아듣고 깨우칠 수 있는 표현으로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는 자이다. 최악의 선생은 제자의 수준을 무시한채 ’자신의 잘났음을 팔려는 자(106쪽)’이다. 특히 본성이 악해서 남을 해치것에 아무 거리낌 없는 위나라 왕같은 자에게 ‘잘났음을 팔아 (남에게)해를 끼치면……해를 돌려 받게 되니….. 너도…… 해를 입기가 십상이리라’라는 말이 저절로 이해된다.

나도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했고 지금도 대화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해왔고 지금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떤 대화와 관계는 무리없이 잘 유지되만, 종종 어긋나고 삐긋거릴 때도 있다. 가만히 그 이유를 돌아보면 사실 나의 잘못이 크다. 공자의 조언대로 나의 말을 들어주면 하고, 안 들어주면 그만두어야 하거늘, 나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상대를 설득하려 했다. 이 모습은 미국에가서 한국말을 쏟아내며 왜 못알아 듣나며 답답해 하고 성질내는 모양과 동격이다. ’잘났음을 팔아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그만 두자.

’내가 옳다‘라는 문장에는 두 가지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나‘와 ’옳다‘
장자를 공부하면서 ’옳다‘라는 것의 무의미함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한발 나아가 요즘 새로 시작한 불교공부에서는 ’나‘라는 것이 애초에 없다라는 것에 대해 공부중이다. 공부가 점점더 흥미진진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