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르주나 중론/중론: 용수의 사상, 저술, 생애의 모든것

[중론: 용수의 사상, 저술, 생애의 모든 것] 제1장 용수의 사상 - 나. 용수의 실재론 비판 - 3) 설일체유부 이외의 실재론

태루럽 2024. 6. 30. 23:57

설일체유부가 실재하는 실체로 간주하는 다르마와 그것들 사이에 보이는 인과관계
다르마는 존재의 요소, 존재의 성질, 기능을 실체화한 것
(예를 들어, 네가지 원소의 경우 지는 견고함, 수는 습윤성, 화는 열성, 풍은 유동성을 말함)

# 비판
* 다르마에 각각 고유한 성질, 기능이 있다면, 다르마와 다르마 사이의 인관관계 성립하지 않고, 원래의 존재성이 성립할 수 없게 되어 변화를 설명할 수 없게 됨
* 다르마에 그와 같은 고유한 성질, 기능 등이 없는 것이 ‘무자성, 공’이고
* 그와 같이 주장하는 입장을 ‘법무아론’이라고 한다.





1. 정양부의 부실법



2. 독자부의 ‘뿌드갈라’

*불교는 ‘비아’의 입장에 있었고, ‘나, 아뜨만‘라고 할 수 없는 대상에 ’나‘라고 집착하는 것을 강하게 부정, 한역에서는 비아를 무아로 번역하였고 이것을 ’제법무아‘라고 부른다.

*붓다는 ’나‘라고 파악되는 것을 삿된 견해로 강하게 부정, ’나‘와 관련된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는 무기로 일관

*[밀린다왕의 물음]을 보면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아’가 강하게 의식됨
그리스적 사고를 갖고 있던 밀린다왕에게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아설은 큰 의문
그것을 이해하고 나면, 이번에는 ‘무아의 윤회’가 큰 수수께끼가 됨
장로 나가세나는 현재 세상의 몸과 마음(영색)과 다음 세상의 몸과 마음의 관계를 왕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 설일체유부도 비아, 무아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 75법을 규정한 것은 ‘제행무상, 제법무아“를 설명하기 위해서

* 바이쉐시까 학파에게 아뜨만은 실체의 하나이므로 ’나‘는 나눌 수 없고 항상 있는 존재이라는 전제 있음

* 설일체유부는 항상 있는 존재는 인과관계에 의해 제약되지 않는 무위로서 허공, 택멸, 비택별 세가지만 인정

* 나머지 72가지 유위법은 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계속 존재하지만 그 작용은 현재에만 발휘된다는 의미에서 찰나적인 존재이고 무상한 존재

*75법 중에 ’나‘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5온, 12처, 6계등 다양한 요소(법)로 구성되능 인간에게 ’나는 존재하지 않게 됨

* 독자부의 뿌드갈라

* 행위, 인식, 윤회의 주체를 용인, 적극적으로 교리의 하나로 주장하는 부파

*용수의 비판

어떤 사람들(독자부)은 말한다. (행위대상과 행위자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시각기ㅘㄴ, 청각기관 등의 감관, 혹은 감수 등의 마음작굥이 존재하기 이전에 그것들이 이후에 속하게 되는 <사람>이 이미 존재한다. 왜냐하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떻게 시각기관 등이 속하게 될 것인가. 그러므로 그것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사람>이 확립된 것으로존재한다.

만일 <사람(뿌드갈라)>이 윤회한다고고 하는 경우, 5온, 12처, 6계에 관해서 <사람>을 5형태분석으로 하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도대체 누가 윤회한다는 것인가?


*인간존재 안에 무엇인가의 주체, 혹은 변하지 않는 실체를 인정ㅎ는 견해를 부정하는 것이 ’인무아론‘



3. 행위의 주체로서 ‘까라까’

* 제8장 ’행위자와 행위대상의 고찰‘에서 ’행위자(까라까)‘는 ’뿌드갈라(사람)‘나 ’아뜨만‘의 경우롸 달라, 행위에 한정된 주체. 문법적 ’주어‘에 해당하는 개념

* 인무아론의 근간에 위치하는 까라까

4. 까라까와 공성

*제26장 ’12연기의 고찰‘에 단 한 번 ’행위자(까라까)‘ 나옴, 윤회나 해탈에 대한 용수의 생각을 보여주는 중요한 말

무명이라는 번뇌에 덮여 있는 자는 다시 태어나도록 이끈 세 종류의 행(행(선, 불선, 불동), 신/구/의, 삼업)을 행하고 그 업들 때문에 9천계부터 지옥에 이르기까지 윤회의) 다음 행선지로 향한다.

그렇게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윤회의 근본원인인 모든 행을 행한다. 그러므로 업을 행하는 자(까라까)는 어리석은자이고 현자는 업을 행하는 자가 아니다. 현자는 진실을 보기 때문이다.

무명이 소멸하면 모든 행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런데 무명의 소멸은 바로 이 (연기에 대한 인식의 수행에 의한다.


* 위 세 게송이 의미하는 것은

*윤회의 근본이 되는 행위를 하는 자(까라까)는 어리석은 자

*근본 무지라는 번뇌에 덮여 있는 자

*그는 그 행위(업)에 의해 다음 행선지로 향하면서 윤회한다.

*역으로 진실을 보는 현자는 연기에 대한 의식의 수행에 의해 근본무지가 소멸학고 행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윤회하지 않는다.

*’현자는 업을 행하는 자가 아니다. 즉 까라까가 아니다‘라는 것은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행위한다‘는 뜻

*이는 행위에 대한 집착이 없다는 말이며, 행위에 관해 언어적 다원성, 분별이 없다는 의미

취(집착)가 있으면 집착하는 자에게 유(윤회를 통한 생존)가 일어난다. 실제로 만일 어떤 사람이 집착을 갖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해탈해버려 새로운 유가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행위를 하지 않는 자가 행위에 의해 다음의 생존 상태로 나아가는 일이 없는 것과 같이, 집착을 갖지 않는 자에게는 윤회를 통한 생존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느 쪽도 윤회로부터 해탈하게 된다는 것을 설명

*환멸문: 무명(근본무지)의 소멸 -> 노사(늙음과 죽음의 괴로움)의 소멸

업과 번뇌가 소멸함으로써 해탈이 있다. 업과 번뇌는 개념적 사유에서 일어난다. 갖가지 개념적 사유는 언어적 다원성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언어적 다원성은 공성에서 소멸한다.(18.5)

* 공성->언어적 다원성의 소멸->개념적 사유의 소멸->업/번뇌의 소멸’은 12연기에서 환멸문에 해당

*용수는 기존의 12연기를 섞어 넣은 새로운 환멸문 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