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아데이만토스): (수호자들은) 정작 나라는 이들의 것이면서도, 이들이 나라에서 좋은 일로 혜택을 입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파수꾼 노릇만 하는 사람들에 불과해 보인다.
답변(소크라테스): 우리는 어느 한 집단이 특히 행복하게 되도록 하는게 아니라, 시민 전체가 최대한으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건 우리가 그런 나레에서 올바름(올바른 상태, 정의)을 가장 잘 찾아 볼 수 있는 반면, 가장 나쁘게 경영되는끔 함으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온 나라를 행복하게끔 함으로써 하는 것…… 각각의 부분에 알맞는 색을 칠함으로써 전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 수호자들을 임명함에 있어서…… 자시의 일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일꾼들로 되게끔 만들고 설득해야
플라톤은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전체를 아름다운 것으로 만든는 도구로 인간을 사용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 하고, 사람들을 설득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위험해 보인다. ’전체중의란 개인의 이익보다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여 집권자의 정치권력이 국민의 정치생활은 물론, 겅제, 사회, 문화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전면적이고 실질적인 통제를 가하는 것‘이다. 전체주의적 사상을 가진 지도자에게는 이러한 시각이 매우 효과적인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히틀러나 독재자들이 이런 시각을 가졌을 것이다.
전체주의: 이탈리아 독재자 무솔리니는 1920년 “국가 안에 모두가 있고, 국가 밖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으며, 국가에 반대하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기술하였고 이것이 후에 ’토탈리타리스모‘라는 용어가 되었다.
제시(소크라테스): 부는 사치와 게으름 및 변혁을 초래하는 반면, 빈곤은 변혁에 더하여 노예 근성과 ‘기량의떨어뜨림’을 초래한다.
질문(아데이만토스): 이 나라가 재물을 갖지 못했을 경우에, 특히 크고 부유한 나라를 상대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어떻게 싸울수가 있겠습니까?
답변(소크라테스): 그런 나라들(부유한 나라)의 각각은 ‘수많은 나라’이자 ‘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일세…… 어떤 경우에나, 거기엔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두 개의 나라, 즉 가난한 자들의 나라와 부자들의 나라가 있네. 한데, 이 각각 안에도 아주 많은 나라가 있어서, 만약 자네가 이것들을 하나로 간주하고 접근한다면, 자넨 완전히 실수를 하게 될 걸세. 그러나 여럿으로 보고서 접근하여, 한쪽의 재물과 세력 또는 인력 자체를 다른 쪽에 넘겨줄 것 같으면, 자넨 언제나 동맹군을 많이 갖되 적은 적게 가질 걸세…… 나라가 커지더라도 하나로 머물러 있게 되는 한도까지, 즉 그 정도까지 키우되, 그 이상은 키우지 않는 걸세…… 충분하고 하나인 것이 되도록 모든 방법을 수호해야 된다
한 나라내에 부와 가난, 다시말해 경제적 양극화가 생기면 외형상 한 나라일지라도, 실제는 분열된 나라이다. 분열된 나라와의 전쟁은 오히려 쉽다. 그러므로 자신의 나라를 ‘충분히 하나’인 상태를 유지학기 위해서 수호자 계층의 절제와 노력이 필요함을 설파하고 있다.
교육과 양육의 중요성
우리 아이들은 곧바로 한결 준법적인 놀이에 관여해야만 되지 않겠는가?…… 아디들이 놀이늘 함에 있어서 시작을 훌륭히 하게 되어, 시가를 통해 ‘훌룡한 법질서’를 받아들이게 되면…… 모든 면에서 훌륭한 법질서가 뒤따르고 배양될 것이니…… 어떤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교육을 받기 시작하는가에 따라 이런 것들과 이에 준하은 것들이 결정될 것….. 언제나 닮은 것이 닮은 것을 불러들이지 않는가
여기서 시가라는 것은 문학과 노래를 넘어서 현대의 학문의 많은 부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견 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통제와 인위는 독점과 획일화를 초래한다. 현재 시점 대한 민국의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문화와 언론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주무르고 왜곡하는 현상은 위와 같은 주장에서 연원한 것일터이지만, 그 폐해가 너무도 심각한 지경이다.
이 나라가 지혜, 용기, 절제, 올바를(정의)것이라는 건 아주 분명하이…… 아주 명백한 첫째것은 지혜…… 나라전체와 관련해서 어떤 방식으로 이 나라가 대내적으로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가장 잘 지낼 수 있을 것인지르르 숙의 결정해 주게 될 그런 지식….. 지도자와 통치자 집단의 지식에 의해서 일세…… 그 성질상 최소 부류가 되는데, 모든 지식(앎) 중에서도 유일하게 지혜라 불리어 마땅한 그런 지식에 관여하는게 어울리는 것은 이 부류(참된 수호자)에 있어
한 나라가 용기 있는 것은 이 나라의 어떤 한 부류에 의해서임…… 용기란 일종의 보전…… 법에 의한 교육을 통해 두려워할 것들이 무엇무엇이며 또 어떠한 것들이지, 이와 관련하여 생기게 된 소신(판단)의 보전…… 고통에 처하여서도, 즐거움에 처하여서도, 욕망에 처하여서도, 공포에 처하여서도 이를 버리지 않고 끝끝내 보전하여 지님을 의미….어떻게 하면 이들이 우리한테 설복되어, 마치 물감을 받아들이듯, 법률을 받아들이기를 최대한으로 잘 하게 될까 하는…… 소신(판단)이 짙게 물들여져서는 세척에 있어서 강력한 이런 세제들도, 즉 이런 세척 작용에 있어서는 그 어떤 소다나 잿물보다 더 강력한 쾌학도, 그리고 또 그 어떤 세제보다 강력한 고통과 공표 및 욕망도 이들의 염색을 탈색시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일세. 두려워할 것들고 두려워하지 않을 것들에 관한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판단)’의 지속적인 보전과 그런 능력을 나로서는 용기라 부르며
이 부분에서는 약간의 소름을 느낀다. 인간을 사회의 부족품으로 여기고 그들의 정신에 일부의 엘리트가 원하는 가치관을 주입하는 것을 마치 양털에 염색하는 과정에 비유하고 있다. 양털의 염색이 어떤 강한 세제에도 물빠짐이 없게 하기 위해 철저한 전처리 과정을 거치듯, 사람이 수호자로서 용기를 갖도록 세뇌시키는 과정에 정성들일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정의 용기, 역할 등을 인간에게 인위적으로 부여하는 과정이 2천년전부터 논의 되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소름끼치기도 한다. 타율의 개입이고 인간존엄의 훼손이다. 그리소 이것을 시민적 용기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절제란 일종의 질서요, 쾌락과 욕망의 억제일 걸세. 사람들이 ‘저 자신을 이긴다’(저 자신보다 더 강하다)는 표현을 써서 말하듯이 말일세…… 다수의 미천한 사람들의 욕구가 소수의 한결 더 공정한 사람들의 욕구와 슬기에 의해 제압되고 있음……누가 나라를 다스려야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다스리는 자들과 다스림을 받는 자들간에 ‘같은 판다(의견)’이 이루어져 있는 나라…… 시민들 중위 어느 쪽이. ‘절제함’이 있다고 자네는 말하겠는가? 다스리는 자들 쪽에 있는가, 아니면 다스림을 받는 자들 쪽에 있는가?….. 양쪽 다에 있을 것 같군요…… 절제란 일종의 화성을 닮았다…… 절제는 덩말로 나라 전역에 걸치는 것으로서, 가장 햑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과 가장 강한 소리를 내는 사람들, 그리고 중간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합창함으로써 전음정을 통하여 마련되는 것…… 한마음 한뜻
(정의 란) 각자가 남의 것을 취하지도 않도록 하고, 또한 제 것을 빼앗기지도 않도록 하는 것…… 제 것의 소유와 제 일을 함이 올바름
제 것의 소유는 무엇인가?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말하는 소유와 사유재산은 현대의 사회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 현대보다 훨씬 제한적이다.
제 일을 한다는 것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